청화천황 당시 옛 일을 상고하는 대화_신라,고구려를 두렵게한 협수언 장군

이미지
청화천황 당시 옛 일을 상고하는 대화_신라,고구려를 두렵게한 협수언 장군 (八月) 十九日庚申 左京人散位外從五位下伴大田宿禰常雄賜伴宿禰姓 先是 正三位行中納言兼民部卿皇太后宮大夫伴宿禰善男等奏言 常雄款稱 謹稽家諜 伴大田宿禰同祖 金村大連公第三男狹手彦之後也 狹手彦 宣化天皇世 奉使任那 征新羅 復任那 兼助百濟 欽明天皇世 百濟以高麗之寇 遣使乞救 狹手彦復爲大將軍 伐高麗 其王踰城而遁 乘勝入宮 盡得珠寶貨賂 以獻之 礒城嶋天皇世 還來獻高麗之囚 今山城國狛人是也 狹手彦再使海外 征伐兩國 盡力絶域 復立二國 身尊當時 功流後代 但古人朴質 除兩國盡力非私 皆賜別姓 是以子孫不得大部 別賜大田宿禰 而狹手彦之弟阿彼布古 承父爲大部連公 自斯而後 恐子孫之不廣 無復更賜別姓 今阿彼布古之後 歷代尊顯 而狹手彦之後 擧朱紱者 曠世無聞 一祖之枝 榮枯殊隔 沈淪之歎 告訴無止 常雄幸逢昌泰 新參花轂 門蔭中興 寔爲榮慶 刊大田兩字 同歸於一宗 然則外不辱功臣之序 內方敦孔懷之親 善男等伏檢家記 所陳不虛 請刊彼兩字 直賜宿禰 控其支派 入此本源 從之 (내가 그린 그림) (내가 그린 그림) (내가 그린 그림) 일본삼대실록(日本三代實錄)   >   권 5 淸和天皇   >   貞觀3년 8월 19일(0861년 08월 19일(음))  >  狹手彦의 新羅·高麗 정벌시 활동과 功績 狹手彦의 新羅·高麗 정벌시 활동과 功績 ( 861년 08월19일(음) ) (8월) 19일 庚申 左京人 散位 外從5位下 伴大田宿禰常雄에게 伴宿禰의 姓을 내렸다. 이에 앞서 正3位 行中納言 兼 民部卿 皇太后宮大夫 伴宿禰善男 등이 아뢰어 말하기를 “常雄이 간곡하게 말하기를, 삼가 家諜을 살펴보니 伴大田宿禰는 (저희들과) 조상이 같은데 金村大連公의 셋째 아들 狹手彦의 후예입니다. 狹手彦은 宣化天皇 때(535~539)에 任那에 사신으로 가서 신라를 정벌하고 任那를 회복하였으며, 아울러 백제를 도왔습니다.註 001 欽明天皇 때(539~571)에 백제는 고려의 侵寇로 인하여 사신을 보내어 구원...

광개토비 신묘년 기사

 대하사극 "신묘년도해파백잔가라신라" 테마 음악 ===테마 음악============= https://youtube.com/clip/UgkxhSn8YMXFBR5OlGN0L3HL1vCDpx8XC0XY?si=ng_YRquPCIos3sED ======================= "  1면 8행  百殘, 新羅, 舊是屬民, [백잔(=백제), 신라는 옛 속국으로 1면 9행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來, 渡海破百殘□□□羅, 以爲臣民,  以六年丙申, 王躬率水軍, 討伐殘國. 軍至?(南;10행),  조공을 바쳐왔다. 그러나 신묘년 이래로 왜가 바다를 건너 백잔과 □□(가라)과 신라를 쳐  신민으로 삼았다.  때문에 6년 병신에 왕은 몸소 수군을 인솔하여 (왜국의 졸개가 된) 백잔국을 토벌했다. ]  (내가 ai로 그린 그림 : 광개토태왕 ) "  1면 8행  百殘, 新羅, 舊是屬民, [백잔(=백제), 신라는 옛 속국으로 1면 9행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來, 渡海破百殘□□□羅, 以爲臣民,  以六年丙申, 王躬率水軍, 討伐殘國. 軍至?(南;10행),  조공을 바쳐왔다. 그러나 신묘년 이래로 왜가 바다를 건너 백잔과 신라를 쳐 신민으로 삼았다.  때문에 6년 병신에 왕은 몸소 수군을 인솔하여 백잔국을 토벌했다. ] ========================== https://youtube.com/clip/UgkxhSn8YMXFBR5OlGN0L3HL1vCDpx8XC0XY?si=RrvxMCQ9w1YbUmLZ ==========================

광개토호태왕비 비문 전체

  광개토호태왕비 비문 전체  // ========== 1면 1행 惟昔始祖鄒牟王之創基也, 出自北夫餘天帝之子,  母河伯女郞, 部卵絳世, 生而有聖德, □□□□□命駕 옛날에 시조인 추모왕이 나라를 건립할 때에 그의 부친은 북부여 천제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하백여랑으로 알을 깨고 세상에 나왔다. 태어나자 곧 성덕이 있었다. 世 : 出로 읽음. 水谷悌二郞만 世로 봄 而 : 子(雙勾本) 德 : ?만 보임. 1면 2행 巡幸南下, 路由夫餘奄利大水, 王臨津言曰 ; “我是皇天之子,  母河伯女郞, 鄒牟王, 爲我連?浮龜”應聲卽爲(我連?浮龜;3행) 순행 남하하였다. 그는 남하하는 길에 부여의 엄리대수를 지나게 되었다. 왕은 나루에 이르러 말했다. “나는 황천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하백의 딸이다. 나를 위해 거북을 띄워 배로 삼고 갈대로 다리를 만들어라” 소리에 따라 즉시 거북과  갈대로 이루어진 다리가 나타났다. 幸 : 車 津 : 聿 1면 3행 連?浮龜, 然後造渡, 于 沸流谷忽本西, 城山上而建都焉. 不樂世位,  因遣黃龍來不迎王. 王于忽本東岡, 黃(龍負升天;4행) 연후에 강을 건넜다. 비류곡 홀본지방 서쪽의 산 위에 성을 쌓아 도읍을 삼았다. 세상의 왕위를 즐기지 않아 (하늘은) 황룡을 보내 왕을 영접하였다. 왕은 문득 홀본 동강에서 황룡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沸流 : 송양의 전설과 관계가? 黃 : 水谷悌二郞은 履로 봄. 負 : 水谷悌二郞은 首로 봄. 1면 4행 龍負升天. 顧命世子儒留王, 以道興治. 大朱留王紹承基業.  遝至十七世孫 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유명을 이어받은 세자 유류왕이 치국지도로 사업을 진흥시켜 국가가 大治되었다. 대주류왕은 양대의 기업을 계승하여 계속 발전했다.  이어 17세를 전하여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에 이르렀다. 興 : 大 遝 : 윗부분에四자가 남아있음. 朴時亨은 遝(=及)으로 봄. 1면 5행 二九登祚, 號爲永樂太王. 恩澤洽于皇天, 威武桭被四海,  掃除不□, ...

임나일본부 관련 사료_삼국유사 내물왕 부분의 야마토 인질 기록

임나일본부 관련 사료_삼국유사 내물왕 부분의 야마토 인질 기록 삼국유사의 내물왕 부분의 야마토 인질 기록 삼국유사 권 제1  >   제1 기이(紀異第一)  >   나물왕(奈勿王) 김제상(金堤上)  > 奈勿王 一作那密王金堤上 第十七那密王即位三十六年庚寅倭王遣使來朝曰, “寡君聞大王之神聖使臣等以告百濟之罪於大王也, 願大王遣一王子表誠心於寡君也.” 於是王使第三子羙海 一作未吐喜.以聘扵倭, 羙海年十歳. 言辝動止猶未備具, 故以内臣朴娑覽爲副使而遣之. 倭王留而不送三十年. "나물왕(奈勿王)이라고도 하는 제17대 나밀왕(那密王) 36년 경인(庚寅)에 왜倭 왕이 사신을 보내 와서 말했다. "우리 임금이 대왕의 신성함을 듣고 사신 등을 보내 백제의 죄를 대왕께 아뢰게 하려 합니다. 원하시면 대왕께서는 왕자 한 분을 보내어 우리 임금에게 성심을 나타내 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왕은 셋째 아들 미해(美海), 또는 미토희(未吐喜)라고도 하는 아들을 왜(倭)에 보냈다. 이때 미해의 나이가 열 살이었다. 말과 행동이 아직 익숙하지 않아 내신(內臣) 박사람(朴娑覽)을 부사로 (왜국)에 함께 보냈다. 그러나 왜(倭) 왕은 이들을 억류하여 30년 동안 보내지 않았다." *내물마립간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17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356년∼402년이다. 후대에 내물왕이라고 불렀고 나밀왕이라고도 불렀다. *내물왕 즉위 36년째 되는 해는 391년이며 신묘년이다. 경인년이 아니다. 경인이든 신묘이든간에 일단 광개토비의 신묘년 기사와 상당히 시기가 근접하며 야마토는 백제가 신라를 치려하면 그걸 미리 알려줄테니 왕자를 인질로 보내라고 한다. 내물왕은 그걸 믿고 왕자를 사신으로 보냈다. 하지만 왕자는 인질이 되어 일본 열도에 30년 동안 억류가 되었다. 이것이 광개토 고구려측에는 신라가 야마토의 신민이 되었다는 식으로 잘못 정보가 전해졌을수도 있다.(광개토비 신묘년 기사) 혹은, 이 사료가 후대 신라측의 변명에 가까운 것이라면, 내물왕 ...